上古時代 영국의 역사 조작 - wookay/kbyon GitHub Wiki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대하여

  1. 영국의 역사 조작

영국이 주축이 되어 유럽의 모든 고고학자들이 지중해의 섬 크레타에 모여들어 유적 조사를 시작하면서 크레타(Crete) 섬이 터어키 영토에서 그리이스 영토로 넘어간 때가 1913년이며, 영국인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십여년간 이집트 왕릉의 계곡에서 발굴조사를 하다가 투탄카멘(Tutankhamon)의 무덤을 발견하였을 때가 1922년이다. 유럽인들의 이집트의 고대 유적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나폴레옹의 탐사대가 이집트에 들어간 시기인 1798년부터로서, 프랑스에서 이에 대한 보고서인 '이집트지'가 나온 이후, 이집트는 유럽인들에게 초유의 관심사가 되었으며, 그후 182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인들이 이집트와 아시아 문명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조사를 시작하였다. 1836년에는 이집트의 길이 22m 되는 길다란 단일거석인 오벨리시크(Obelisk, 긴 첨탑)를 배로 실어 날라 파리 콩코드 광장에 세워 놓았으며, 이에 질세라, 1878년 영국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오벨리스크를 배로 실어 날라 테임즈 강변에 세워 놓으면서, 점차 유럽인들의 문화재 약탈이 늘어나 나중에는 해적 이상으로 그 한도가 없었다.

전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투탄카멘의 무덤 발굴은 발굴된 황금 유물보다 이를 발굴하던 발굴관계자들이 하나씩 십여년에 걸쳐 모조리 의문사를 당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더욱 유명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 신문기자들의 글솜씨 탓도 있었지만, 오히려 비밀 첩보기관의 개입일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하워드 카터는 투탄카멘 발굴 전에 이집트 주재 영국 군첩보부에 몇 년간 근무하였다고 하며, 그후 재정 후원자인 캐너번(Carnavan)을 만나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캐너번은 귀족 출신의 돈많은 거부로서 당시에 수레같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불구인 상태이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투탄카멘 발굴이 끝나자마자, 1923년 캐너번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후 곧 카터도 죽었는데, 이들 모두 모기에 물려 죽었다거나 면도하다가 난 상처 때문에 죽었으며, 이들이 모두 무덤의 저주로 죽었다면서 영국 신문들은 글자하나 틀리지 않고 마치 합창을 하듯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떠들었는데, 유언비어와 스캔들로 범벅을 만드는데 능한 영국 언론이 이때의 이야기를 팔십년 가까이된 지금도 글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복사하듯이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다.

이렇게 이집트와 크레테에서 발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모조리 의문사하거나 떼거지로 몰살당하고 난 후, 크레타와 이집트 역사는 갑자기 영국 학자들에 의하여 2000년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인류 문명의 기원지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크레타의 미노스 문화와 고대 이집트 문명은 고대 그리이스 문명 이전의 초유의 문명처럼 여기게 되었고, 자연스레 유럽의 고인돌도 이집트 문명 이전의 것이 되어, 유럽의 저명한 연로학자들께서 지구의 문명은 지구 바깥의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인이 건설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낭설을 고집하게 되었다. 즉 이때부터 유럽의 고대 역사는 아시아와는 별도로 크레타와 이집트에서 비롯하였다고 주장하게 되었는데, 그 근거가 바로 총칼을 거머쥔 힘있는 자가 말하면 그대로 인정되는 기상천외한 추정연대와 방사성탄소 절대연대에 있다. 그런데 막상 크레타 문화는 미케네 문화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으며, 영국에서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4000년대 즈음으로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초기 이집트 문화는 기껏 올려 잡아도 중국 전국시대의 오월(吳越) 문화인 기원전 1000년대에서 기원전 500년대 안팎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일부는 기원후까지 내려갈 수 있다.

크레타 섬은 영국인 아서 에반스(Arthur Evans)를 앞장세워 영국 정부가 주도하여 나서서 그리이스 영토로 바꾼 후에야 정식으로 발굴이 되었는데, 그만큼 발굴로 드러난 유적은 거의 전부 영국인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Cnossos) 유적이란 것이 원래는 돌무더기 폐허로서, 이 돌무더기를 에반스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의 미궁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몇층씩 제멋대로 올려놓아, 자신의 꿈꾸던 꿈의 디즈니랜드로 바꿔놓았다. 그런데 막상 지금의 유럽인들은 이 꿈의 디즈니랜드를 보고 이것을 진짜로 크레타 섬의 고대 유적으로 믿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처럼 외계인의 존재까지 믿는 경우가 생겨났다. 에반스도 나중에 영국으로 가서 고대 로마의 도로를 발견하고 3일만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에반스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 대개 해외에 파견된 영국인들은 한결같이 모두 영국 군첩보부의 지시를 받거나 그 패거리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근 200년 동안 영국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집트와 크레테 문화에 대한 무엇인가를 속여서 자신들의 고대 역사를 조작하고, 더나아가 유럽의 고대 역사를 아시아 역사 이전의 것으로 조작한 것인데, 그 공작의 일환으로 진실된 입을 봉하기 위하여 발굴 관계자들을 하나씩 살해하고, 그 의문을 덮어버리기 위하여 군첩보부에서 언론과 소설가를 앞장세워 무덤의 저주라고 속인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2003-06-22 발표)

  1. 반고의 후예들 (上古時代 - 반고의 후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