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時代 반고의 후예들 - wookay/kbyon GitHub Wiki
- 반고의 후예들
한반도 민족은 예로부터 '배달의 자손'이라 일컬었는데, 배달(倍達)은 치우 환웅이 나라를 다스렸던 신시(神市) 시대의 나라 명칭이다. 신시를 청구국(靑丘國)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청구국은 백성들이 밭을 일구며 사는 곳을 말한다. 환웅이 처음 만주에 신시를 세울 때, 반고(盤固)라는 자는 서방으로 가서 나라를 세웠는데, 서방은 지금의 중국 섬서성과 감숙성 일대를 말한다. 이때 이야기를 삼성기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삼성기(三聖記 全 下篇)에 이르기를, "그때 반고(盤固)라는 자가 있었는데, 기이한 술법을 즐기며, 갈라지기를 바라면서 다른 길로 가고자 하여 허락하였다. 드디어는 재물과 보물을 모아,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신장(神將)을 통솔하여 공공(共工), 유소(有巢), 유묘(有苗), 유수(有燧)와 함께 삼위산(三危山) 라림동굴(拉林洞窟)에 이르러, 군주가 되어 제견(諸견, 戎)이라 하였는데, 그를 일컬어 반고(盤固) 가한(可汗)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라림동굴은 지금의 돈황동굴(敦煌石窟)을 말하며, 반고는 반호(盤瓠)로서, 중국의 설화에서 반호는 용암에서 태어나 개가 되어 중국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를 수신기에서 전하고 있다.
수신기(搜神記 14卷 2)에 이르기를, "고신씨(高辛氏) 때, 노부인이 왕궁에서 살았는데, 귓병을 얻어 얼마를 지났다. 의사가 귓속을 후벼서 머리 꼭대기에 사는 벌레를 끄집어냈는데, 크기가 고치 정도 되었다. 부인이 죽고 난 후에, 그 벌레를 바가지(瓠) 속에 두고, 쟁반(盤)으로 덮었는데, 갑자기 그 벌레가 개(犬)로 변하면서, 무늬가 오색(五色)이 되어, 이름을 반호(盤瓠)라 하고, 그것을 길렀다. 그때 융오(戎吳)가 강성하여 여러 차례 변경을 침범하기에, 장수를 파견하여 토벌하였지만, 쉽사리 잡아서 이길 수 없었다. 이에 천하에 공모하여 융오 장군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는 금 천근(金千斤)으로 사겠으며, 읍(邑) 만가구에 책봉하고, 또한 막내딸도 주겠다고 하였다. 나중에 반호가 머리 하나를 입에 물고, 궁궐로 나갔다. 왕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이 융오의 머리이었다. 이를 어찌 할 것인지 물어보니 여러 신하들이 말하기를, 반호는 가축이니, 벼슬과 녹봉을 줄 수 없고, 또한 막내공주도 줄 수 없습니다. 비록 공은 있으나 상을 줄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막내공주는 이를 듣고 왕에게 알리면서 말하기를, 대왕은 이미 저를 주기로 천하에게 허락했습니다. 반호가 머리를 물고 와서, 나라의 해악을 없앴습니다. 이것은 천명이 시킨 것이지, 어찌 개(狗)의 지력(智力)으로 그리 했겠습니까. 임금 된 자는 말을 무겁게 하고, 천하를 제패한 자는 신의를 중시합니다. 불가합니다. 보잘 것 없는 여자의 몸 때문에, 천하에게 분명하게 약속한 것을 저버린다면 나라에 화(禍)가 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놀라서 그 말을 쫓아 막내공주에게 반호를 따라가도록 영을 내렸다. 반호는 그녀를 데리고 남산 위로 올라갔는데, 초목이 무성하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의상을 벗어버리고, 종처럼 더벅머리를 묶고, 혼자 힘으로 옷을 지어 입고, 반호를 따라 산을 오르고, 골짜기로 들어가서, 석실 속에 머물렀다. 왕이 슬피 생각하더니, 사람을 보내 찾아보도록 하였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산에 번개가 치고 구름이 끼고 어두워져서 그곳에 갔던 사람들은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
3년이 지나 6남 6녀를 낳았는데, 반호가 죽은 후, 자녀들이 서로 짝을 지어 부부가 되어, 나무껍질로 베를 짜고 길쌈을 하고, 풀과 열매로 염색하였다. 오색 의복을 좋아하였는데, 옷 마름질은 모두 꼬리를 달았다. 나중에 어머니(막내공주)가 돌아가서, 왕에게 말을 하자, 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여러 남녀를 맞이하였는데, 하늘에서 다시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들의 의복은 줄무늬로 이어져 있으며, 언어는 알아듣기 어렵고, 음식은 웅크리고 앉아서 먹었다. 산을 좋아하고, 도읍을 싫어하여, 왕이 그들의 뜻을 헤아려 명산과 너른 늪지를 하사하고, 그들을 일컬어 만이(蠻夷)라고 하였다. 만이는 겉으로는 어리석으나 속으로는 약았고, 땅을 중시하고 옛것을 중시하였다. 이들은 천명에 있어서 다른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는 법률로 그들을 대우했다. 밭농사를 하는 장사를 하든 관세와 부절(符傳)이 필요 없었으며, 조세를 부담할 필요도 없었다. 읍에는 군장이 있어, 그들에게 모두 인끈을 주었는데, 그들의 모자는 수달 가죽으로 만들고, 물에서 돌아다니며 음식을 구했다. 오늘날의 양주(梁), 한중군(漢), 파군(巴), 촉군(蜀), 무릉군(武陵), 장사군(長沙), 여강군(廬江郡)의 이족(夷)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쌀죽에 물고기와 고기를 섞어서, 말구유를 두드리며 부르짖으면서 반호에게 제사 드리는데, 그 풍속이 아직 남아있다. 옛날에 세간에서 이르기를, 허벅지를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들이 바로 반호의 자손들이다." 라고 하였다.
만이(蠻夷)는 오월 등의 남이(南夷)를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남이는 서이와 남이를 합쳐 말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는 원래 만주와 한반도의 동이족이 산동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와 살게된 종족으로, 삼묘족(三苗族)이 바로 그들이다.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동이와 서이가 먼저 등장하고, 남이는 나중에 나타나는데, 남이를 삼묘족(三苗族) 또는 도이(島夷)라고 말하기도 한다. 곰털이나 수달 가죽을 원통형으로 둘러 만든 검은 털모자는 과거 만주족의 상징으로, 현재 영국 근위병(近衛兵)의 전통적인 모자로 남아있으며,(1) 인도네시아와 러시아에서 전통적인 모자 양식으로 남아있다. 또한 오색옷은 색동저고리로서 한반도의 전통적인 한복(韓服)에 남아있으며, 옷자락에 매단 꼬리는 서왕모의 표범 꼬리와 통하고, 연(燕)나라 때 연미복(燕尾服)이 되었다가, 오늘날 유럽인들의 행사용 연미복(燕尾服)으로 남아있다. 짧은치마는 여학생 전용의 스컷트를 말한 것으로, 현재 일부 무당들의 덧치마로 전해지며, 또한 지금의 영국 스코트랜드 원시고원족, 일명 하이랜더(Highlander) 후손들인 '치마입는 남자들'의 전통으로 남아있다. (2003-07-21 발표)
- 한국(韓國) 민족(民族)의 기원(起源) (The Origin of Korean Peoples) (上古時代 - 韓國 民族의 起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