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時代 東夷族의 고인돌 - wookay/kbyon GitHub Wiki
- 동이족(東夷族)의 고인돌(Dolmens of DongEes)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참으로 많고 많습니다. 남북한 할것없이 나즈막한 언덕과 평지에는 크고작은 고인돌이 수없이 산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고인돌이 바로 역사시대 이전의 우리 조상들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북한의 한반도와 현재 중국 땅에 속해있는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의 동북삼성(東北三省)은 원래 한반도와 같은 종족인 동이족(東夷族)들의 근거지이었으며, 고인돌이 바로 동이족들이 만들었던 돌무덤입니다. 원래 동이족 출신인 진시황(秦始皇)이 중국 대륙을 통일하면서 우선 동이족(夫餘族, 현재 길림성 지역)의 한자(漢字)를 차용하여 나라의 글로 삼았으며, 책력(冊曆) 또한 동이족에게서 차용하여 수없이 교정하면서, 그들의 책력으로 바꾸었지요. 그리고는 동이족들의 모든 역사와 증거물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과거의 책들을 보지못하게 금지시켰습니다. 산동반도(山東半島) 또한 동이족 지역이었는데, 진시황에게 가장 처참하게 당한 곳이 이 산동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산동지역에서는 고인돌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요. (1) 나머지 요동반도를 비롯하여 길림성 지역에는 아직도 수많은 고인돌들이 남아있습니다.
우습지요. 이런 찬란한 역사를 갖고있는 동이족은 사실 처음에는 그런 진시황을 우습게 알았지요. 오로지 과거의 명성에만 매달리기 바쁜 처지라 새롭게 등장하는 새 물결을 미쳐 눈치채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엄청난 사실이 숨어있었습니다. 바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지요. 바다가 땅으로 바뀌고 땅이 바다로 바뀌는 엄청난 변혁(變革)을 겪고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방랑생활(放浪生活)을 시작한 때가 천지개벽 이후의 일입니다. 그 때가 바로 중국대륙에서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이지요. 이 이후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것도 주로 만리장성(萬里長城) 동쪽의 요서지방(遼西地方)에서부터 점차 새로운 청동기(靑銅器)가 들여오면서 고인돌을 만들던 동이족들도 중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지요. 그 전까지는 거꾸로 모든 것이 동이족에서 비롯하였지만, 천지개벽 이후에는 오히려 야만족으로 강등되고 뿔뿔이 배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유랑생활을 시작하였지요. 사실 동이족은 원래 해양족(海洋族) 출신이었거든요.
천지개벽 이전에도 동이족들은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베트남(Vietnam)을 거쳐 인도(India) 북부, 그리고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 그 다음에 이디오피아(Ethiopia), 그리고는 지중해(地中海)에서 위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Israel)을 비롯하여 요르단(Jordan), 그리고 터어키(Turkey) 중부, 러시아(Russia) 남부의 흑해(黑海) 연안 까프까즈 지방까지 배를 통하여 그들의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중해 연안의 유럽인(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동부)들의 원조들은 이 동이족의 고인돌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점차 더욱 커다란 고인돌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대규모의 거석건축물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나 지중해로 이주한 일부 동이족들은 알프스(Alps) 계곡을 지나 독일(Germany) 남부로 들어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의 영국(Scotland)과 아일랜드(Ireland)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지요. 그러니 브리튼(Britain) 섬에서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우선 이베리아(Iberia) 반도인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다시 동이족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이렇듯이 최소한 지금부터 2500년 이전에는 우리의 한반도(韓半島)와 만주(滿洲)지역은 전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세계의 고인돌과 거석문화가 사실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황해도(黃海道) 황주(黃州) 일대는 이 고인돌 시대에 가장 중심되는 지역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고인돌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이지요. 평양일대는 주로 천지개벽 이후에 확산되었지요. 사실 한강일대는 이 고인돌 시대에 가장 애매모호한 곳입니다. 분명 황주에서 고인돌 문화가 일어날 때 한강(漢江) 유역에서는 또 다른 기존의 나라가 있었지만, 나중에는 고인돌 문화에 밀려 고령(高靈)을 거쳐 김해(金海)와 부산(釜山)으로 이주한 듯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고인돌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봉토분(封土墳) 문화를 개척하였지요. 그러니 고령을 비롯한 김해 지방은 전세계 봉토분의 출발지인 셈이지요. 그러나 황주에서 비롯한 고인돌이 요동지방으로 확산되면서 중국 내륙의 문화와 충돌하여 규모가 커졌으며, 여기에서 김해를 비롯한 남해안 세력과 함께 발길을 해외로 돌린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러한 봉토분조차 고인돌과 돌무지무덤과 함께 지중해를 거쳐 서쪽으로 서쪽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지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 지방입니다. 비록 나중에는 브리튼 섬에서 쫓겨간 브리튼족들이 더욱 거석문화를 확대시키고 성장시켰지만, 원래에는 프랑스 동남부의 지중해 연안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세계의 고인돌과 거석문화가 몽땅 한반도와 요동반도에서 비롯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곳이 있었지요. 이 한반도와 요동반도의 고인돌로서는 전세계의 모든 거석문화가 일목요연하게 해명되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얼어붙은 북극(北極) 근처의 카라해(Kara) 어디쯤에 있는 빙판(氷板) 속에 그 열쇠를 풀어줄 흔적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2000-01-28 발표)
(1)산동성 태산(太山) 근처의 제(齊) 나라 지역에는 과거에 여러 기의 탁자식 고인돌들이 남아있었다고 전하는데, 모택동 시절에 문화혁명(文化革命)을 치르면서 모택동의 홍위병들에 의하여 모조리 파괴되어, 현재 산동반도에 남아있는 고인돌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 고대 역사의 심각한 오류 (Fatal Errors in Ancient History) (上古時代 - 고대 역사의 심각한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