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時代 고대 역사의 심각한 오류 - wookay/kbyon GitHub Wiki
- 고대 역사의 심각한 오류 (Fatal Errors in Ancient History)
현재까지 일반에게 알려져 있고 학교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는 기원전의 선사시대와 고대의 역사는 그 대부분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제기한 학설을 기초로 한 것들입니다. 특히 방사성탄소(放射性炭素) 등 고고학적 유물과 흔적을 통하여 그 대강의 연대를 측정하였다는 절대연대는 사실 그 어느 누구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검증(檢證)할 수 없는 가장 불확실한 연대이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부정할 수도 없는 연대로서, 그저 각 나라에서 주장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현재 우리가 알고 배우고있는 고대와 선사시대의 연대들은 가장 분명한 절대연대(絶對年代)라고 하지만, 오히려 가장 부정확한 추정연대(推定年代)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연대가 나오게 된 동기는 사실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 산재한 고인돌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언제 이러한 고인돌을 만들었는지 매우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이집트에 있는 거대한 초대형 피라미드가 유럽 학계에 알려지면서 영국과 프랑스 학자들은 우선 이집트 고대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하였고, 당연히 고인돌의 연대는 그 이전으로 여겼지요. 이러한 과정에서 지중해를 비롯한 유럽의 고대와 선사시대의 연대가 성립되었으며, 이 이집트 왕조의 연대에 맞추어 다른 지역의 연대들이 차츰차츰 정해지기 시작하였지요. 물론 이 연대를 성립하는 가장 중추적인 역할은 당연히 조상 대대로 고인돌을 숭배하였던 영국의 학자들이었지요.
그래서 현재 알려져 있는 고인돌의 연대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주장되었으며, 그 연대를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3000년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의 어느 거석 묘지에서 기원전 4000년경이라는 엄청난 측정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물론 이 연대를 가장 반겼던 이들은 영국 학자들이었지요. 그 이후에는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시기를 기원전 2000년에서 4000년경으로 확립시키고 이를 보급시켰지요.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때려 맞추다 보니 프랑스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프랑스 서해안의 브르따뉴(Bretagne) 지방에 널려진 고인돌을 비롯한 초대형 거석유적들이 전설에서는 그저 기원 전후의 골(Gauls)족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영국과 보조를 맞추어 이제는 골족이 아닌 그 한참 이전인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고대 선사시대 역사에서 무려 2000년이라는 가공할 시간적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또한 여기에 맞추다 보니 유럽의 고인돌이 외계인(外界人)이 만든 유적이라고 까지 말하게 되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엉터리 작가들이 여기에 상상으로 완벽하게 포장하여 그러한 거석 유적들이 1만년전 또는 2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등, 아예 선사의 역사를 상상과 허구로 멋지게 꾸며 놓았지요. 그나마 양심있는 유럽 학자들은 자신들의 고인돌이 흑해(黑海) 연안의 코카사스(Caucasus, Kavkaz) 지방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즉 유럽의 백인종(白人種)의 근본(根本)과 유럽 역사의 출발을 카프카즈(코카사스) 지방에서 찾고있는 것이지요.(3)
그런데 이렇게 줄기차게 코카사스 지방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유럽 왕족의 전통 속에는 항상 동쪽과 동방(東方), 동양(東洋)이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자신들의 조상과 그 뿌리 또한 동양이었다는 오래된 전설과 믿음 때문입니다. 제3제국을 꿈꾸었던 히틀러와 그의 측근 히물러가 추구하였던 새로운 원동력은 우스꽝스럽게도 선사시대부터 전해지는 신비스러운 절대 왕권유지의 비결과 도구이었으며, 그 혈통을 아리안족(Arians, Aras)으로 보았고, 그 흔적을 찾느라고 인도의 곳곳을 헤집고 다녔지요. 나찌(Nazis)의 상징인 네 개의 갈고리(Swastica)는 십자가(Cross)의 원형(原型)이며, 절대 왕권의 상징이었는데, 한국과 일본, 중국, 인도 등지의 동양에서는 이를 주로 '卍'자로 표현하였지요. 이 '卍'자는 사실 태극(太極)의 또 다른 상징적 무늬입니다. 즉 사방(四方)으로 굽이쳐 뻗어가는 사태극(四太極)(1)이라고나 할까요. 히물러를 비롯하여 유럽의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들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성궤(聖櫃) 또한 돌로 짜여진 빛나는 석관(石棺)을 말합니다. 아마도 빛나는 벽옥(碧玉)으로 만든 석관(石棺)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이러한 벽옥제(碧玉製) 석관(石棺)은 아직 발견된 바가 없지만, 한(漢)나라 시대에는 석관 대신에 주검을 감싸는 옥의(玉衣)를 만들었는데, 이 옥의는 주검을 감싸는 형태만 남아있고 그 안의 시신은 건드리는 즉시 먼지로 변하기 때문에 바로 이런 옥의를 두고 서양인들이 성궤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돌로 만든 관을 사용하였던 종족은 오로지 동이족(東夷族)으로서, 요동(遼東)과 길림(吉林), 산동(山東), 남북한의 한반도(韓半島), 쿠슈(九州), 오끼나와(沖繩)에서만 발견되는데, 그 중심되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입니다.(2)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 최고의 전설인 아서(Arthur) 왕과 마법사 멀린(Merlin) 이야기는 스토운헨지(Stonehenge)와 고인돌(Dolmen)에 관련된 전설이며, 영국에서의 절대적인 왕권 유지의 도구는 단순한 돌덩어리와 검(劍)이었습니다. 영국의 국회의사당과 유명한 교회 안에는 이와 비슷한 돌이나 직검(直劍)에 관한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직검의 원형(原型)인 돌단검(石短劍, 磨製石劍)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시황(秦始皇)의 무덤에서 출토된 보검(寶劍)도 직인검(直刃劍)이 아닌 곡인검(曲刃劍)으로서, 한반도와 요동지역에서만 출토되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에서 변형된 것입니다. 또한 이 비파형동검도 요동(遼東)지역이 아닌 남한에서 출토되는 돌단검에서 변형된 것으로, 돌단검의 검날(劍身)과 검자루(劍把)가 함께 이어지고 여기에 다시 또 다른 검자루가 덧붙여지면서 만들어진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요동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단검은 바로 남한의 남해안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고, 그 후에 요동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카사스와 그리이스에서 출토된 청동검들은 남해안에서 출토되는 비파형단검의 변형으로, 입사귀와 비슷한 엽인검(葉刃劍)이며, 영국과 유럽에서 출토되는 직인검은 남한에서 만들어진 돌단검과 형태가 비슷합니다. 이를 보고 일제시대에 일본의 어느 유명한 고고학자(考古學者)는 유럽의 검을 모방해서 우리나라의 돌단검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였는데, 남한의 고인돌에서 돌단검들이 엄청나게 출토되면서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분명 고인돌과 그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하여 보면 유럽의 고인돌과 그 유물들은 우리의 한반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 학자들, 그 가운데 특히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자신들이 거창하게 세워놓은 절대연대(絶對年代)와 그 연대기(年代記)를 나열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유럽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즉 자신들이 만든 연대에서는 분명 20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 차이가 있거든요. 그들의 말 대로라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는 과거에 갑자기 아인슈타인이 말한 시간이동(時間移動)이 생겨서 그 모두들 타임머신(TimeMachine)을 타고 왔다갔다 했다는 말이지요. 이러자 북한에서는 근간에 이같은 유럽식 절대연대 측정 붐이 조성되어 영국이 만든 절대연대와 비슷하게 맞추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남한에서는 고인돌 제작연대가 서로 2000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2000년의 차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분명 어딘가에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은 분명합니다. 근 200년간 계속 이렇게 단추를 잘못 끼우다가 지금와서는 그걸 도저히 어찌 고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영국인들이 자랑삼아왔던 전 세계의 역사(歷史) 연대기(年代記) 편년(編年)이 몽땅 잘못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과 잘못이 드러난 이상 한시빨리 시정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오류를 안다 하더라도 영국인들 스스로 그 오류를 자인(自認)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쌓아놓은 공든 탑이 헛수고로 돌아가는 마당에 그저 앉아서 자신들의 치욕을 반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분명 우리가 알고있는 모든 역사에는 엄청난 오류(誤謬)가 있으며, 그 속에는 고의적으로 꾸며놓는 엄청난 음모(陰謀)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2000-09-17 발표, 2003-01-23 수정, 2004-08-06 주석 보충)
(1) 실상 사태극(四太極)이란 말은 없으며, 그 대신 윷무늬(柶板文)를 말한다고 할 수 있는데, 십자환주형(十字環周形)의 윷 무늬 자체는 옛 하도(舊 河圖) 이전의 것으로서, 환역(桓易, 易)을 말하는 것이어서, '卍'자 무늬는 음양(陰陽) 태극(太極)의 변화(易)를 사시사방(四時四方)에 맞추어 좀더 세분(細分)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2) 오끼나와(沖繩)는 유구(琉球)와 나패(那覇)가 합쳐진 말로, 유구(琉球)의 현지발음은 '유쿠', '오끼'로서 옥(玉)을 말하고, 나패(那覇)의 현지 발음은 '나하', '나와'로서 곧 나라(國)를 말한 것으로, 오끼나와의 원래 발음은 한글의 옥나라(玉國)라고 할 수 있다. 오끼나와 주둔 미군들에 의하여 시작하여 미국인들에게 아주 좋다는 뜻의 속어로 쓰이는 '오키도키(Okidoki)'는 한글의 옥도끼(玉斧, Okdoki)를 말한 것으로, 오끼나와의 원주민들 가운데 한반도 이주민들이 많아 한글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오끼나와에서는 무덤을 '거북이'라는 뜻으로 부르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고인돌(支石)을 거북바위, 즉 구암(龜岩)이라 말하는 것과 상통하며, 괌(Guam)섬도 원래 구암(龜岩)에서 비롯한 말로 볼 수 있다.
(3) 아주 오래된 전설과 기록에 의하면 지구는 아시아 대륙에만 해가 떠 있었고, 나머지 시베리아,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는 해가 뜨지 않아 밤만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의 형질에 벰파이어, 늑대인간 등의 선천적인 음기가 잠재하게 되었으며, 그후 유럽이 지금처럼 해가 뜨면서 주로 카프카즈 지역에서 온 인류와 아시아의 극동과 이란 지역에서 온 우수 혈통의 인종이 합쳐져 현재의 유럽인종과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 한반도의 검(劍)은 전 세계 모든 검의 조형 (Ancient Swords of Korea are Archetypes of All Swords of the World) (上古時代 - 한반도의 劍은 전 세계 모든 검의 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