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時代 姓氏 - wookay/kbyon GitHub Wiki
- 성씨(姓氏)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 나라가 한반도(韓半島)에 세워지기 전에는 한반도 이곳저곳에서 쓰는 언어(言語)가 가지각색이었지요. 서북지방, 중부지방, 서남지방, 동남지방,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등으로 서로 지역에 따라 달리 사용하였지요. 그러다가, 기원전 100년 경부터 즉, 지금으로부터 2100 ~ 2000년전 무렵에 지구에 대격변(大激變)이 일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곳저곳에서 민족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지요. 먼저 만주(滿洲)나 연해주(沿海洲) 지역의 민족들이 남하(南下)하기 시작하여, 점차 그 물결은 중국 내륙으로 파급(波及)되고, 그와 함께 한반도 전역(全域)에서도 민족대이동(民族大移動)이 일어났지요. 이는 일본 열도에서도 마찬가지로서, 쿠슈(九州)에 있던 왜(倭) 왕국이 무너짐과 동시에, 쿠슈에 있던 귀족들은 동쪽의 혼슈(本州)지방으로 동진(東進)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한반도에서는 만주와 서북지방의 귀족이 남하하여 지금의 한강유역과 금강유역으로 들어갔지요. 그러나 그 지역은 이미 가야국(伽倻國)과 마한국(馬韓國)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지구 대격변으로 인한 민족 대이동에는 속수무책, 그 결과 과거의 왕국은 힘을 잃고, 그 대신 한강 유역부터 동진(東進)하면서 이주자(移住者)들이 세운 새로운 왕국들이 속속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왕국은 사실 지금과는 달리 조그만 읍락국가(邑落國家)로서, 각 고을마다 왕국(王國)이 다른 형편이었지요.
이 때 가장 먼저 성씨(姓氏)를 사용한 종족은 한문자(漢文字)의 원형(原形)을 사용하던 부여족(夫餘族)이었지요. 곧 나라 이름을 문자(文字)로서 밝힌 부족이 한반도 최초의 성씨(姓氏) 국가(國家)로 남게 되었답니다. 한자(漢字)의 승리이자, 진(秦)나라의 공(功)도 없지 않아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전에 있었던 나라들이 가문(家門)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요. 가령 고령(高靈)의 김씨(金氏)는 부여족이 남하하기 전부터의 한반도 토박이이지만, 성씨를 사용하지 않다가, 한참 뒤에서야 쇠 '금' 또는 '김'으로 개종(改宗)하였답니다. 고령(高靈)이 망하면서 경주(慶州)와 김해(金海)로 편입(編入)되었지요.(1) 같은 계열의 한씨(韓氏)는 '가야' 또는 '가락'을 한자로 바꾸면서 현재의 음(音)처럼 '한'이 되었지요. 이와 비슷한 사례(事例)는 엄청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반도의 토박이들도 자신들의 언어를 고집하다가 결국 한자로 기록되면서, 각자 달리 자신들의 음(音)에 맞추어 한자로 표기한 것이지요. 성씨를 표기하게된 원인 중에는 중국에서도 한반도로 이주하는 귀족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오히려 이들 중국이나 만주에서 넘어온 귀족(貴族)들이 사용하는 수많은 성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過言)은 아닙니다.
여하튼 새로운 이주자들에게 밀리면서 한반도의 일부 귀족들은 일본 열도로 건너갔지요. 모두 자신들의 가문(家門)인 성씨(姓氏)를 가슴에 품고 말이지요. 곧 한 부족의 구성원은 모두 같은 성씨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각 읍락국가 별로 나름대로의 성씨를 달리 갖고있었지만, 점차 한문(漢文)이 넓게 사용되면서 간추려지고, 또한 전쟁으로 인한 상호(相互) 편입(編入)이 이루어지면서, 지금처럼 간추려지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현재처럼 성씨를 사용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로지 왕족(王族)과 귀족(貴族)들만이 소유한 것으로서, 달리 말하면, 지금의 성씨는 곧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획득한 전리품(戰利品)이나 다름없었으며, 곧 자기 부족(部族)과 가문(家門)의 과시(誇示)이자, 영광(榮光)이었지요. 현재의 성씨(姓氏)는 2000년간 한반도 부족(部族)의 역사기록(歷史記錄)이자,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證人)이며, 그 모두 한자(漢字)로 표기(表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99-06-19 발표)
(1)여기에서 말하는 고령(高靈)의 김씨(金氏)는 신라 박혁거세 이전의 청동기시대의 종족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령 김씨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단군(檀君) (上古時代 - 檀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