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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학수지(幼學須知) 관련 율곤학회 검색자료

글쓴이 bc8937

한국 최초의 국어교과서는 1895년 8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에 해당하는 조선 정부의 학부가 개발한 초등학생용 " 국민소학독본 " 이라고한다.

서양교육사를 보면 1657년 코메니우스가 역사상 세계최초로 " 대교수학 " 이라는 그림교과서를 출판했다고한다. 어리석게도 우리나라의 교육학자들도 각종 논문을 통하여 세계최초의 교육학적 교과서는 코메니우스의 " 대교수학 " 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너무 몰라서 하는 헛소리이다.

조선시대 학동들이 서당에 들어가 천자문을 배우고 난 후에 사용하던 교재가 동몽선습(童蒙先習)이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은 박세무(朴世茂, 1487~1554)가 저술하였다. 이것이 세계최초의 어린이 교육용 교과서이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1577년경 선조(宣祖) 10년 정윤승(程允升) 정석산(程錫山) 형제의 공저(共著)로서, 어린이들의 교과서(敎科書)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학수지(幼學須知)가 쓰여졌다.

유학수지에는 고대의 역사(歷史) 사상(思想)은 물론 천문(天文), 지리(地理), 과거제도(科擧制度), 문사(文士), 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사우지간(師友之間), 혼인(婚姻) 등이 잘 기록되어 있다.

첫장을 보면 역대 帝王이었던 삼황(三皇) 오제(五帝)로부터 원(元), 명(明) 등에 이르기까지 한民族의 고대(古代) 조선(朝鮮)이 면면이 이어져온 것을 가사(歌詞)체로 엮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천문(天文)부터 시작되고 있다. 우주(宇宙)가 혼돈(混沌)할 때부터 기(氣)에 의해 자연(自然)이 창조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선조(宣祖) 10년 1577년에 저술이 끝난 후부터 순조 17년(1817년) 정축년(丁丑年)까지 무려 240여 년간 교과서로서 향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유학수지에는 국가의 부흥을 위해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 말 일제의 침략으로 역사관련 모든 책은 수탈 당하고, 한民族의 역사와 사상은 물론 우리말과 이름까지도 빼앗기는 수난 속에서 유학수지 역시 빛을 잃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736년 때의 교정본(校訂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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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수지 관련 검색결과

그리고 1577년경 朝鮮王朝 때 선조(宣祖) 10年에 著書된 유학수지(幼學須知)는 정윤승(程允升)과 정석산(程錫山) 兄弟가 共著한 第一卷 統系편에도 기록하고 있다.

특히 幼學須知는 朝鮮王朝 宣祖 10年부터 純祖 17年까지 무려 240여 년간 어린이들의 敎科書로서 使用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1577년 丁丑年에 著書한 幼學須知는 240年이 지난 1817년 丁丑年까지 朝鮮王朝에서 敎科書로서 脈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幼學須知는 1736年 淸나라 건륭(乾隆) 때 다시 교정본(校訂本)으로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漢文字는 한民族의 歷史에 의해 만들어졌다 ⑥-1

律坤

② 三讀法과 三味法

漢文字는 읽는 法을 모르면 연달아 글을 이어 썼기 때문에 싫증나게 되어있다. 옛 先祖들이 글을 쓸 때 띄지 않고 연결하여 책을 엮었기에 어려운 漢文字만 보면 보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漢文字에는 띄어 쓰지는 않았지만 어조사의 글자에서 문장의 단락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王朝 때 어린아이들을 敎育시키기 위해서 14世 선조(宣祖)에서 23世 순조(純祖)에 이르기까지 무려 240여 년 간 향교(鄕校)에서 가르쳐온 교과서(敎科書)가 있다. 이 책에 보면 첫 장에 역대제왕국호가(歷代帝王國號歌)와 역대세통가(歷代世統歌)로 되어있다. (幼學須知 參考)

어린아이들이 쉽게 알고 외울 수 있도록 노래가사 식으로 古代帝王들의 歷史를 기록하고 있다.

本文 全篇을 소개하고 이어서 간략하게 說明하기로 한다.

天皇地皇人皇氏. 名曰三皇居上世.

太昊炎帝及軒轅. 唐虞紹之爲五帝.

夏商周秦東西漢. 後漢魏吳三國判.

漢亡於魏魏禪晉. 晉遂平吳天下定.

擾西晉者有五姓. 劉石慕容苻姚競.

神州從此遂瓜分. 南北烽烟久不靜.

南爲東晉居江左. 宋齊梁陳踵其都.

北朝元魏倂五姓. 東魏西魏分爲二.

東傳北齊西禪周. 周又滅齊禪隋帝.

隋能平陳海宇一. 曾幾何時禪唐室.

唐祚終兮爲五季. 梁唐晉漢周相繼.

宋代周兮天下平. 中南渡兮迫於金.

倂金代宋祚歸元. 明祖承元十六傳.

軒轅甲子訖有明. 總揆歷數幾多春.

四千三百四十一. 神器萬年歸大淸.

三 皇.

鑿開混沌分天地. 天地分從攝提歲.

是生萬物人最靈. 斯人之初盤古氏.

天皇兄弟十三人. 人各一萬八千歲.

地皇兄弟有十一. 亦各一萬八千歲.

人皇兄弟九人優. 兄弟九人分九州.

相傳一百五十世. 四萬五千六百秋.

三皇以後有巢出. 搆木爲巢食木實.

有巢氏後燧人興. 鑽燧改火敎民食.

五 帝.

奧自太昊伏羲氏. 首畫八卦造書契.

女媧共氏曁無懷. 風姓相傳十五世.

後有神農號炎帝. 始嘗白草敎來耜.

傳及楡岡姜姓終. 八世五百二十歲.

公孫軒轅爲黃帝. 垂裳而治法乾坤.

金天小昊是其子. 高陽顚頊是其孫.

曾孫帝嚳高辛氏. 玄孫伊祁放勳字.

放勳是爲陶唐堯. 禪于虞舜其姓姚.

夏.

禹啓太康與仲康. 帝相少康杼槐芒.

泄不降扃厪孔甲. 帝皐帝發履癸亡.

家天下者始夏禹. 取天下者始成湯.

商.

成湯太甲幷沃丁. 太甲小甲雍巳承.

太戊仲丁外壬立. 河亶甲兮祖乙興.

祖辛沃甲祖丁繼. 南庚陽甲與盤庚.

小辛小乙武丁續. 祖庚祖甲兼廩辛.

庚丁武乙太丁嗣. 帝乙至紂國祚氵垂.

盤庚以前爲商號. 盤庚以後號爲殷.

周.

文武成康與昭穆. 共懿孝夷厲宣幽.

平桓莊釐惠襄頃. 匡定簡靈景悼侔.

敬元貞哀思考烈. 安烈顯愼赦東周.

威烈以後爲戰國. 平王以後爲春秋.

春秋戰國.

成王以魯封伯禽. 齊與陳兮曹燕秦.

衛宋楚晉鄭吳國. 十二分據春秋成.

秦始嬴姓後滅周. 韓魏趙氏分晉都.

更有楚燕與齊國. 俱幷于秦六國休.

秦.

滅周之祀莊襄王. 幷呑六國始皇强.

高弑二世子嬰立. 項羽滅之秦乃亡.

得秦之號自非子. 滅秦之姓自始皇.

漢.

高惠呂后文景承. 武昭宣元成哀平.

光明章和殤安繼. 順沖質桓靈獻更.

西漢高帝起豐沛. 東漢光武起春陵.

後漢三國.

漢始昭烈終後主. 魏文明齊高貴公.

傳及陳留王已矣. 吳王旣逝會稽逢.

止於景帝及鳥程. 是爲三國相憑陵.

後漢討賊爲正統. 魏吳滅漢皆簒臣.

兩晉.

武惠懷愍元明成. 康穆哀奕井簡文.

孝武安帝及恭帝. 兩晉之時十五君.

武帝洛陽爲西晉. 建康元帝作東京.

南北朝宋齊梁陳隋.

宋武少文孝武至. 癈明蒼梧及順帝.

齊高武明東昏和. 梁武簡文元敬繼.

陳武文臨宣長城. 隋文煬帝恭帝畢.

五朝二十有五君. 共歷二百有八歲.

唐.

高太高武中睿玄. 肅代德順憲穆傳.

敬宗文武宣宗續. 懿僖昭曁哀宗完.

高宗以後多女亂. 肅宗以後藩鎭叛.

更有奄宦竊大柄. 竟爲唐室之世患.

五代梁唐晉漢周.

梁有太祖及末帝. 唐莊明閔潞王締.

晉有高齊漢高隱. 周則太祖世恭繼.

五代相傳十三君. 僅曆五十餘三歲.

宋.

太祖太宗眞仁英. 神宗哲宗幷徽欽.

高孝光宗寧理繼. 度恭端兮帝昺沉.

太祖太宗成帝業. 高宗南渡號中興.

元.

元之克宋始太祖. 大宗定憲蠶九有.

世祖混一滅宋君. 成宗繼以武仁英.

泰定明文寧順絶. 八十九年傳十葉.

明.

太祖首出大明君. 孫蒙祖號乃建文.

成祖燕藩入正位. 洪熙宣德正統配.

弟襲兄統景泰移. 天順復位干古奇.

成弘太平正德繼. 嘉隆萬歷稱盛治.

泰昌天啓逢否運. 崇禎殉國社稷正.

大淸.

帝心簡在大淸昌. 天明十一歸帝鄕.

天總十年崇德八. 順治十八遂陟方.

康熙垂拱六十一. 雍正十三宣重光.

富今卽位春常在. 南山萬壽永無疆.

천황씨(天皇氏.B.C.8479.壬寅年), 지황씨(地皇氏.B.C.8364.丁酉年), 인황씨(人皇氏.B.C.8247.甲午年)를 말한다면 삼황(三皇)은 上古時代 때 살았던 왕이다.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B.C.3512.己丑年),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B.C.3071.己丑年), 그리고 헌원황제씨(軒轅黃帝氏.B.C.2679.壬午年)와 당우도당씨(唐虞陶唐氏.堯王儉. B.C.2357.甲辰年), 유우씨(有虞氏.帝舜.B.C.2284.丁巳年) 등은 오제(五帝)이다. 즉 五帝란 다섯 사람의 帝王들이 이어왔음을 말한다.

하(夏.B.C.2224.丁巳年), 상(商.B.C.1766.乙未年), 주(周. B.C.1122.己卯年), 진(秦.B.C.221∼207.庚辰年), 동서한(東西漢.B.C.206∼A.D.8.乙未年), 후한(後漢.A.D.25∼220.乙酉年)을 거쳐왔다. 그리고 위(魏.A.D.220∼265.庚子年), 촉(蜀.A.D.221∼263.辛丑年), 오(吳.A.D.222∼280.壬寅年)의 三國은 전쟁으로 판을 벌려왔다.

漢나라와 위(魏)나라가 망할 때 위나라에서 선(禪)을 통해 진(晋.A.D.265∼420.乙酉年) 나라를 건국한 사람은 사마염(司馬炎)이었다. 晋나라는 吳나라를 망하게 한 후 드디어 天下를 평정하였다.

서진(西晉.A.D.265∼317.乙酉年)은 五代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대단히 요란하고 시끄러웠다. 그 당시 유석(劉石)과 모용(慕容) 그리고 부요(苻姚) 등이 서로 힘을 겨루며 다투었다. 그때 신주(神州)를 한 울타리로 하여 나누어져 있었다.

여기서 신주(神州)를 中國古今地名大辭典에는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謂中國也 詳赤縣神이라 했다. 즉 말한다면 신주(神州)는 中國이란 뜻이다. 더 상론하자면 적현(赤縣)이 신주(神州)라고 적고 있다.

赤縣神州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中國古今地名大辭典 742쪽 416쪽 參考)

史記孟子荀卿傳. 中國名曰赤縣神州. 赤縣神州內自有九州. 禹之序九州是也. 不得爲州數. 中國外如赤縣神州者九. 乃所謂九州也.

史記 孟子 순경전(荀卿傳)에는 中國이란 이름을 말할 때 적현신주(赤縣神州)라 한다. 赤縣神州 內에 있는 것은 九州이다.

다시말해 현재 中國大陸을 夏나라 우(禹)임금 때 아홉 고을로 두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명실공히 중국대륙(中國大陸)은 아홉의 단위로 지경을 나눈 것을 말한다. 이것은 禹임금의 서문에 九州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中國大陸이 워낙 방대하므로 부득이 고을(州)의 수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中國大陸 바깥과 같이 적현신주(赤縣神州)는 아홉이다. 이상과 같이 中國大陸을 있는바 대로 설명하자면 九州라고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계상 南과 北은 봉화의 연기처럼 오래도록 조용하지 못했다. 南쪽은 동진(東晉)이 강 왼편에 살았고, 송(宋.A.D.420∼479.庚申年)ㆍ제(齊.A.D.479∼502.己未年)ㆍ양(梁.A.D.502∼557.壬午年)ㆍ진(陳.A.D.557∼589.丁丑年)은 도읍지가 가까이 있었다.

북조(北朝.A.D.386∼581.丙戌年:北魏‧東魏‧西魏‧北齊‧北周 等)는 본시 위(魏)나라가 다섯 성(五性)으로 합한 것이었다.

특히 동위(東魏.A.D.534∼550.甲寅年)․서위(西魏.A.D.535∼556.乙卯年)는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東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북제(北齊.A.D.550∼577.甲午年)는 서역에서 선(禪)을 통해 북주(北周.A.D.557∼581.丁丑年)가 되었다.

주(周)는 다시 북제(北齊)를 멸한 후 선통(禪通)을 하여 수(隋.A.D.589∼618.己酉年)나라를 세우고 제왕이 되었다. 수(隋)나라는 진(陳)나라를 평정한 후 진(陳)나라의 바다와 같은 넓은 땅을 하나로 만들었다.

A.D.618年 隋나라가 망할 당시 선(禪)을 통한 이연(李淵)은 당(唐.A.D.618∼626.戊寅年)나라를 세웠다. 唐나라는 A.D.684年에 무주(武周.A.D.684∼705.甲申年)에게 망하게 되었다. 唐나라 高祖인 이연(李淵)이 나라를 세운지 66年만에 무주(武周)에 의해 몰락하는 것이다. 그 후 후당(後唐.A.D.705∼907.乙巳年)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종말을 맞고 말았다.

뒤를 이어 양(梁.A.D.907∼923.丁卯年), 당(唐.A.D.923∼936.癸未年), 진(晋.A.D.936∼946.丙申年), 한(漢.A.D.947∼950.丁未年), 주(周.A.D.951∼960.辛亥年)까지 서로 이어져왔다.

송(宋.A.D.960∼1279.庚申年)나라 때 주(周.A.D.951∼960년)나라는 끝나고 天下 태평시대가 되었다. 그 후 북송(北宋.A.D.960∼1127.庚申年)과 남송(南宋.A.D.1127∼1279.丁未年)이 끝나고 글안(契丹.A.D.907∼1211.丁卯年)과 요(遼.A.D.947∼1211.丁未年)가 망한 후 금(金.A.D.1115∼1234.乙未年)나라는 大陸의 中南인 하남성(河南省)으로 건너와 세력을 넓혔다. 이때 宋나라는 金나라에 합병되었다. 다시말해 金나라 때 와서 宋나라를 굴복시키고 말았다.

원(元.A.D.1206∼1363.丙寅年)나라에 이어 명(明.A.D.1368∼1648.戊申年)나라는 16대까지 전해졌다.

헌원황제(軒轅黃帝.B.C.2679年)가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마친 것은 甲子年이었다. 총체적으로 헌원(軒轅) 때부터 역사적으로 헤아려보면 많은 세월이 흘러갔다. 따져보면 헌원황제(軒轅黃帝)로부터 명(明)나라가 망할 때까지 4341年간이다.

上古時代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때부터 청(淸.A.D.1583∼1908.戊戌年)까지 돌아보면 1만년의 세월이었다.

삼 황 (三皇).

혼돈한 天地는 뚫리면서 열리게 되었다. 天地가 나누어지고 다스리는 과정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萬物의 최고 영장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사람으로 말한다면 최초에 반고씨(盤古氏.B.C.8937年)이다. 반고씨는 桓仁氏를 말하며 일명 혼돈씨(渾沌氏) 또는 유신씨(有神氏)라고 한다.

天皇의 兄弟는 13명이며 사람마다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여기서 18,000세란 한 사람의 수명을 살아있는 동안을 말한 게 아니라 死後의 世界에서 살았음을 意味하는 것 같다. 아니면 子孫이 18,000년까지 後世에 이어졌음을 말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기록은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帝王韻紀)에 나타나있다. 帝王韻紀는 古代史書인 삼오력기(三五曆紀)를 인용하고 있다.

地皇의 兄弟는 11명이 있었다. 역시 각각 18,000세를 지냈다. 人皇의 兄弟는 9명이 있었는데 兄弟 모두 뛰어났다. 아홉의 兄弟는 구주(九州)에서 나누어 살았다. 즉 九州란 현재 中國大陸 전체를 뜻한다. 그리하여 9명의 兄弟가 150世代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고로 45,600년 동안 세월을 겪어왔다.

三皇 以後 유소씨(有巢氏.B.C.3898.壬申年)가 나타났으며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열매를 먹었다. 유소씨(有巢氏) 이후 수인씨(燧人氏.B.C.3739.壬寅年)에 의해 흥하게 되었으며, 수인씨(燧人氏)는 금광석을 개량하고 따라서 백성들을 불로 익혀 음식을 먹게 하였다.

오 제 (五帝).

사실 따지고 보면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B.C.3512.己丑年)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복희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팔괘(八卦)의 글을 문서로 만들었다.

여와씨(女媧氏.B.C.3419.壬戌年)와 공공씨(共工氏.B.C.3394.丁亥年)에 이르러 생각할 수도 없이 편안하지 못했다. 풍씨(風氏) 성(姓)은 무려 15世 동안 전해져 내려왔다. 그 후 신농씨(神農氏.B.C.3071.庚戌年)가 나타나 약초와 농사기구를 만들어 농경사회를 일구었다고 하여 별칭을 신농(神農)이라 하였고, 또한 호칭을 염제(炎帝)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신농씨(神農氏), 염제씨(炎帝氏)라고도 한다. 또는 염제신농씨(炎帝神農氏)라고도 한다.

특히 神農氏는 1만 가지 약초를 처음 맛보았으며 논갈이 밭갈이를 가르쳤다. 농사짓는 밭갈이와 논갈이 기구로는 따비 끝나무로 만들었고, 약초를 맛보는 과정에서 하루에 열 몇 번의 毒에 감염되었다고 泰山神文化(山東大學敎育出版社刊)에서 밝히고 있다.

느릅나무처럼 강건한 강씨(姜氏)의 뿌리가 전해져 내려오던 것도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王들은 8世 동안 520年에 이르렀다.

헌원황제(軒轅黃帝)는 공손(公孫)이었으며 치마를 드리운 것처럼 하늘과 땅을 법으로 다스렸다.

金天小昊氏의 아들은 전욱(顚頊) 고양씨(高陽氏.B.C.2491.庚寅年)이다. 여기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B.C.2578.癸亥年)는 黃帝의 아들로서 新羅의 最初 祖上이라고, 三國史記 義慈王 마지막 편에 記錄하고 있다.

고로 黃帝의 孫子가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이다. 또한 黃帝의 증손자(曾孫子)는 요왕검(堯王儉)의 아버지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B.C.2482.己亥年)이며, 5代 孫子는 이기씨(伊祁氏.B.C.2357.甲辰年)이다.

즉 이기씨(伊祁氏)는 도당씨(陶唐氏)이며 도당씨는 요왕검(堯王儉)이다. 요왕검은 단군(壇君)이었으며 요왕검의 이름은 방훈(放勳)이라 했다. 放勳 역시 도당씨(陶唐氏)로서 요왕검임을 뜻한다. 고로 요단군왕검(堯壇君王儉)에 이어 선(禪)을 통해 우순씨(虞舜氏.B.C.2284.丁巳年)로 이어지며, 우순씨는 순임금(舜壬儉)으로 요(姚)의 성씨이다.

하 (夏).

우(禹.B.C.2224.丁巳年)임금 계(啓)에 이어 태강(太康.B.C.2188.癸巳年)과 더불어 중강(仲康.B.C.2159∼2147.壬戌年), 그리고 소강(少康.B.C.2079∼2068.壬午年), 저(杼), 괴(槐), 망(芒)의 제상(帝相)들에 의해 왕통은 전해져갔다.

국사연표(國史年表)에 의하면 대우(大禹.B.C.2205.丙子年)는,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B.C.2491.庚寅年)의 孫子이다. 즉 숭백(崇伯)이었던 곤(鯀)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歷史의 기록에는 高陽氏의 아들이 곤(鯀)이며, 곤의 아들은 禹임금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禹임금은 高陽氏의 증손자가 아니라 孫子라 할 것이다. 그러나 國史年表 四種인 역대제왕연표(歷代帝王年表)의 기록에는 전욱(顚頊)의 증손이 숭백곤(崇伯鯀)이라고 되어있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설(泄), 불강(不降), 경(扃), 근(厪), 공갑(孔甲)으로 이어지고 고(皐), 발(發)의 帝王을 거쳐 계(癸)를 끝으로 망하였다.

하(夏)나라 우(禹)임금은 天下의 가문으로 始作되었으나 상(商)나라인 성탕(成湯.B.C.1766∼1754.乙未年)에 의해 天下를 빼앗기고 말았다.

상 (商).

상(商)나라는 성탕(成湯.B.C.1766∼1754.乙未年)이 태갑(太甲.B.C.1753∼1721.戊申年)과 옥정(沃丁.B.C.1720∼1692.辛巳年)을 합하였다. 그리고 태갑(太甲.B.C.1753∼1721.戊申年), 소갑(小甲.B.C.1666∼1650.乙亥年)과 옹사(雍巳.B.C.1649∼1638.壬辰年)로 이어졌다. 그 후 태무(太戊.B.C.1637∼1563.甲辰年), 중정(仲丁.B.C.1562∼1550.己未年), 외임(外壬.B.C.1549∼1535.壬申年) 등이 왕위를 계승했다.

특히 하단갑(河亶甲.B.C.1534∼1526.丁亥年)과 조을(祖乙.B.C.1525∼1507.丙申年)에 이르러 商나라는 흥하게 되었다.

조신(祖辛.B.C.1506∼1491.乙卯年), 옥갑(沃甲.B.C.1490∼1466.辛未年), 조정(祖丁.B.C.1465∼1434.丙申年)에 이어 남경(南庚.B.C.1433∼1409.戊辰年), 양갑(陽甲.B.C.1408∼1402.癸巳年)과 더불어 반경(盤庚.B.C.1401∼1374.庚子年) 때 都邑地를 옮기면서 은(殷)나라로 고쳤다.

소신(小辛.B.C.1373∼1353.戊辰年), 소을(小乙.B.C.1352∼1325.己丑年), 무정(武丁.B.C.1324∼1266.丁巳年)까지 계속되었다. 또한 조경(祖庚.B.C.1265∼1259.丙辰年), 조갑(祖甲.B.C.1258∼1226.癸亥年), 름신(廩辛.B.C.1225∼1220.丙申年)이 계속 겸하여 이었다.

경정(庚丁.B.C.1219∼1199.壬寅年), 무을(武乙.B.C.1198∼1195.癸亥年), 태정(太丁.B.C.1194∼1192.丁卯年) 때까지 잘 이어져왔다. 그러나 제을(帝乙.B.C.1191∼1155.庚午年)과 주신(紂辛.B.C.1154∼1122.丁未年)에 와서 은(殷)나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주 (周).

무왕(武王.B.C.1122∼1116.己卯年)과 성왕(成王), 강왕(康王), 그리고 소왕(昭王)과 목왕(穆王)과 더불어 周나라는 始作되었다. 공왕(共王)과 의왕(懿王), 효왕(孝王), 이왕(夷王), 여왕(厲王), 선왕(宣王), 유왕(幽王) 등은 善政을 베풀었다. 그 후 평왕(平王), 환왕(桓王), 장왕(莊王), 이왕(釐王), 혜왕(惠王), 양왕(襄王), 경왕(頃王)에 이어 광왕(匡王), 정왕(定王), 간왕(簡王), 영왕(靈王), 경왕(景王) 등은 슬픔이 비등하였다.

경왕(敬王), 원왕(元王), 정정왕(貞定王), 효왕(孝王), 위열왕(威烈王) 등은 생각하면 불쌍한 왕이었다.

안왕(安王), 열왕(烈王), 현왕(顯王), 신정왕(愼靚王), 난왕(赧王) 등은 동주(東周)의 王이었다.

특히 위열왕(威烈王.B.C.425∼402.丙辰年) 이후부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접어들었고 평왕(平王.B.C.770∼720 庚戌年) 때부터 春秋時代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평왕(平王) 때부터 春秋時代이며, 威烈王 때 이르러 戰國時代인 B.C.221年까지 지속되었음을 말한다.

당 (唐).

高祖 이연(李淵) 무덕(武德.A.D.618∼626.戊寅年), 태종 이세민(太宗李世民) 고종(高宗), 중종(中宗), 예종(睿宗.A.D.684.甲申年)에서 망한다.

그 후 後唐 때 와서 다시 중종(中宗) 이현(李顯) 신용(新龍.A.D.705∼707.乙巳年)에 이어 예종(睿宗), 현종(玄宗), 숙종(肅宗), 대종(代宗), 덕종(德宗), 순종(順宗), 헌종(憲宗), 목종(穆宗)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경종(敬宗), 문종(文宗), 무종(武宗), 선종(宣宗), 의종(懿宗), 희종(僖宗), 소종(昭宗), 소선제(昭宣帝)에서 불쌍하게도 기울어지고 말았다.

특히 唐나라 고종(高宗.A.D.650∼655.庚戌年) 이치(李治) 이후 많은 女子들의 음란함이 계속되자 숙종(肅宗.A.D.756∼758.丙申年) 李亨인 至德 이후 제후국들이 반란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다시 오래된 내관들이 큰 도둑질을 하는 것을 잡았다고 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唐나라 집안에서는 세상에서 우환이 끊일 사이 없었던 것이다.

五代(梁ㆍ唐ㆍ晋ㆍ漢ㆍ周).

五代時는 양(梁.A.D.907∼911.丁卯年)나라 太祖와 唐나라 장종(莊宗.A.D.923∼926.癸未年), 晋나라 고조(高祖.A.D.936∼941.丙申年), 漢나라 고조(高祖.A.D.947.丁未年) 天福, 그리고 周나라 태조(太祖.A.D.951∼953.辛亥年)로 이어졌다.

梁나라는 太祖에서 末帝까지 이르고, 唐나라는 莊宗에서 明宗, 閔宗, 노왕(潞王)에서 닫혀졌다. 晋나라는 高祖가 있을 때 漢나라 고조(高祖.A.D.947.丁未年)는 등극하자마자 자취를 감추었다. 周나라 太祖에 이어 世宗, 恭帝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五代時는 열셋 임군으로 서로 전해지고 53年間의 역사는 겨우 지속되었다.

송 (宋).

宋나라 태조(太祖.A.D.960∼963.庚申年) 다음으로 태종(太宗), 진종(眞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신종(神宗), 철종(哲宗)과 아울러 휘종(徽宗), 흠종(欽宗)으로 北宋은 끝이 났다.

이어서 南宋은 고종(高宗.A.D.1127∼1130.丁未年), 효종(孝宗), 광종(光宗), 영종(寧宗), 이종(理宗)으로 계속되고, 도종(度宗), 공제(恭帝), 단종(端宗), 제병(帝昺)으로 침몰하였다.

宋나라 太祖, 太宗은 왕업을 이루었으나 高宗은 남으로 건너와 바르게 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 (元).

元나라는 宋나라 太祖를 극하기 시작했다. 태종(太宗.A.D.1229∼1241.己丑年), 정종(定宗), 헌종(憲宗) 때까지 누에처럼 아홉의 임금이 물고 늘어졌다.

세조(世祖.A.D.1260∼1264.庚申年)시 혼란하던 宋나라 임군을 단숨에 멸망시켰다. 그 후 성종(成宗)으로 계속되어 무종(武宗), 인종(仁宗), 영종(英宗), 태정제(泰定帝), 명종(明宗), 문종(文宗), 순종(順宗)에서 끊어졌다. 겨우 89년 동안 10명의 임군으로 가랑잎처럼 내려왔다.

명 (明).

明나라 태조(太祖.A.D.1368∼1398.戊申年) 주원장(朱元璋) 홍무(洪武)는 우두머리처럼 大明君으로 군림했다. 손몽(孫蒙)은 조상이었으며 호칭은 건문(建文)이었다.

그 후 성조(成祖.A.D.1402.壬午年) 때는 연(燕)나라를 정식으로 제후국으로 들어올렸다. 인종(仁宗)이었던 홍희(洪熙)와 선종(宣宗)인 선덕(善德), 그리고 영종(英宗)인 正統을 배출시켰다.

아우가 형을 엄습하여 英宗이었던 正統을 옮기게 하고 代宗인 景泰가 물려받았다. 英宗인 天順은 간고기(干古奇)를 복위시켰다. 憲宗인 成化와 孝宗인 弘治, 그리고 武宗인 正德이 계승한 이래 太平을 누렸다.

그 후 世宗인 가정(嘉靖)과 穆宗인 융경(隆慶), 그리고 神宗인 만력(萬曆) 때 이르러 번창한 정사를 했다고 칭했다.

光宗인 태창(泰昌)과 희종(憙宗)인 천계(天啓)는 不運을 만나게 되고, 思宗인 숭정(崇禎)에 이르러 나라의 사직(社稷)이 바르지 못하고 따라죽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대청(大淸).

帝王의 마음은 眞實로 중요한 것이 大淸이 昌盛하는 것이다. 천명(天命.A.D.1616∼1626.丙辰年)에 이어 열한 명의 제왕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천총(天聰.A.D.1627~1636.丁卯年)은 10년, 숭덕(崇德)은 8년이었다.

순치(順治)는 18년 동안 帝王으로 오를 수 있었다. 聖祖인 강희(康熙)는 무려 61년간이나 손잡고 베풀 수 있었다. 世祖인 옹정(雍正)은 13년 빛나는 정사를 펼쳐 在位동안 언제나 봄을 맞이하듯 나라를 富强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남산(南山)에서 오래도록 만수무강하였다.

여기서 南山은 中國古今地名大辭典 582쪽에 다음과 같이 記錄하고 있다.

南山은 卽 종남산(終南山)이다. 漢書 東方朔傳에는 天下가 막혀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험하고 험한 산임을 말해준다.

南山은 곤륜산(崑崙山) 끝머리인 신강성(新疆省) 南部에서 始作하여 감숙성(甘肅省) 양도(凉道)의 땅에 있는 기연산(祁連山)인 雪山에서부터 섬서성(陝西省)과 하남성(河南省)으로 뻗어간다.

이어서 西安 남쪽에 있는 太白山과 東으로는 강소성(江蘇省) 각 곳으로 뻗어나간 산이다. 한편 太白山을 끼고 南으로 가로지르는 山脈들을 총칭하여 南山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世宗인 옹정(雍正)은 어느 곳에 있는 南山으로 들어가 만수무강의 수명을 누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以上 朝鮮王朝때 240年間이나 어린이 敎科書인 유학수지(幼學須知)에서 보는바와 같이 漢文字의 表記法은 소리글이자 뜻 글로 이어지면서 세 가지 읽는 法과 세 가지 맛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漢文字를 노래가사 식으로 소리 나는 순서로 쓰여 쉽게 읽을 수 있는 方法으로 되어있다. 고로 漢文字는 삼독법(三讀法)과 삼미법(三味法)에서 읽는 법과 맛이 깃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漢字의 三讀法이란 첫째, 눈으로 보고 읽는 目讀法이 있다. 둘째, 소리를 내면서 읽는 낭독법(朗讀法)이 있다. 셋째, 깊이 있게 思想的으로 음미하면서 천천히 바르게 읽는 正讀法이 있다. 正讀法을 일명 深讀法이라고 한다.

목독법(目讀法)에도 몇 가지 方法이 있다. 눈으로 보고 읽을 때 건성건성 보면 안 된다. 뚫어지게 集中하여 보아야한다. 또한 뚫어지게 문장을 理解할 수 있을 정도로 目讀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읽을 때 펜이나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서서히 읽어야한다.

낭독법(朗讀法)에도 몇 가지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 있다. 첫째, 낮은 소리로 천천히 읽어야한다. 둘째,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재미가 있는 듯 즐거운 기분으로 읽어야한다. 셋째, 낭독할 때 노래를 부르듯이 몸짓을 하면서 흥미롭게 읽어야한다.

정독법(正讀法)에도 몇 가지 읽는 법이 있다. 첫째, 글자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읽는다. 둘째, 몇 자를 모아 깊은 뜻을 새기면서 읽는다. 셋째, 한 단락의 글 전체를 깊이 있게 숙독 하면서 읽는 법이다.

물론 속독법(速讀法)이 있는데, 이것은 목독법(目讀法)과 낭독법(朗讀法), 그리고 정독법(正讀法)의 세 가지 읽는 방법이 숙련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석노(釋老)인 老子는 단경(丹經) 즉 眞理로 된 어려운 漢文字의 책을 만권(萬卷)이나 읽었다는 기록이 노자서승경(老子西昇經)에 있음을 본다.

다음은 삼미법(三味法)이다. 漢文字에는 세 가지 맛이 있다. 째, 한자를 보고 알았을 때. 둘째, 한자의 뜻을 알았을 때. 셋째, 한자의 思想을 알았을 때이다.

그리고 漢文字를 보고 알았을 때 몇 가지 더 맛이 있다. 漢字는 무슨 슨 변에 있구나 했을 때이다. 또 무슨 변에 몇 획수에 있구나 했을 때 가벼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漢字를 보고 알았을 때 긍지를 느끼면서 이제 나도 이 글자를 알았을 때이다. 둘째, 漢字의 뜻을 알 때인데, 아! 이런 뜻이 있었구나 할 때이다. 어떤 한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아! 맞아 바로 이런 뜻이야 했을 때이다. 마지막으로 漢字에는 35가지가 넘은 뜻을 가진 글자가 있다. 예를 들면 무거울 중(重)자는 37가지의 뜻이 있다. 여러 가지 뜻 중에 얼토당토 않는 상반된 뜻이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검을 현(玄)자를 보면 검을 현, 아득할 현, 하늘 현, 붉을 현, 마음 현, 구월 현, 간지이름 현, 심오한 도리 현, 현묘한 진리 현, 밝을 현, 빛날 현, 현손 현, 물 현, 신선의 나라 현, 노자장자의 도 현, 성 현, 산이름 현, 신선이름 현, 현무 현 등으로 되어있다.

도대체 아리송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 도리가 없는 때가 있다. 특히 검다고 하는 것과 빛나거나 밝다고 하는 것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때 이치를 알았다면 진정코 漢字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漢字의 思想을 알았을 때이다. 全世界 어떤 學者도 漢字의 思想을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漢文字를 만든 사람들은 형상으로 글을 만든 漢學者도 있고, 思想的인 意味로 만든 漢字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일(一)의 思想을 알지 못하고는 아무리 漢文의 글자를 많이 안다고 해도 수박겉핥기 식이다. 다시 해 껍데기 공부를 한 것에 불과하다.

漢文字의 세 가지 맛을 제대로 안다고 한다면 漢字가 中國 사람들이 만들 글이 아님을 알 것이다. 漢字의 思想이 깃든 몇 글자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孝字를 보면 땅인 흙 토(土)에 하늘에서 빛이 땅속으로 스며들면 늙을 노(耂)자가 된다. 땅속에서 生命인 아들이 태어나면 효(孝)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孝란 웃어른과 父母에게만 공손하라는 것이 아니고 萬物의 生命을 所重히 하라는 自然의 本體思想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식(識)과 덕(德)을 지니고 倫理와 道德을 중요시하는 人格을 갖추어야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漢字임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모집(募集)이라는 글자를 보면 모(募)자는 풀 초(艹)변과 아래는 날 일(日)자가 있다. 또한 날 일(日)자 아래에는 길게 한 일(一)자가 있는데, 한 일(一)자는 땅을 뜻한다.

땅속으로 뻗어있는 것을 땅속으로 빛이 스며든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땅속에서 힘(力)이 생기게 되므로 땅밖으로 草木이 자라난다는 뜻에 나무 목(木)자가 된다.

大地에서 나무가 자라나 무성해지면 새가 날아와 앉는다는 뜻에서 새 추(隹)자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하여 募集이라는 글자를 自然思想을 대입하고 있다.

특히 한民族은 우주(宇宙)의 本體가 희(白)고 萬物의 本體가 희(白)다는 뜻에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했다. 宇宙와 自然, 그리고 萬物의 본체가 희므로 인해 한民族은 흰옷을 입고 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民族은 大自然思想을 대입하여 漢文字를 만들었으며, 따라서 歷史를 일구어 왔던 것이다. 고로 유학수지(幼學須知)에서 보는바와 같이 古代로부터 三皇, 五帝, 夏, 商, 周, 春秋戰國, 秦, 漢, 後漢三國, 兩晋, 南北朝宋齊梁陳隋, 唐, 五代梁唐陳漢周, 宋, 元, 明, 大淸의 뿌리는 朝鮮으로 이어져왔다. 朝鮮王朝 선조(宣祖) 때부터 敎科書用으로 어린이들에게 읽혀져 왔던 것이다.

고로 유학수지(幼學須知)에 있는 歷史의 기록은 한民族의 歷史이자 언어 순으로 表記되어 엮어져 있다.

비록 高句麗․百濟․新羅 등은 記錄되어 있지 않지만 古朝鮮의 歷史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한民族의 言語로 엮어져 소리 나는 대로 漢字를 배열시켰기 때문에 漢字는 소리글이자 뜻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漢文字는 세 가지 읽는 법과 세 가지 맛으로 능히 수백 권의 속독(速讀)이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