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時代 蚩尤旗 - wookay/kbyon GitHub Wiki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대하여

  1. 치우기(蚩尤旗)

치우(蚩尤)는 고대 한반도 동이족의 초기 국가인 배달(倍達) 청구국(靑丘國)의 14대 임금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이었습니다. 배달 나라는 원래 백두산 아래의 길림(吉林) 지역을 영토로 하였는데, 청구국으로 불렸던 당시에 이곳에서 청동(靑銅)이 발명되면서, 검(劍)과 꺾창(戈)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이 꺾창으로 만주에서 더 나아가 하북(河北)과 요서(遼西)를 차지하고 있던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와 충돌하고 중원(中原)에서는 헌원(軒轅)과 충돌하여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쟁과 더불어 배달 나라는 막을 내리고, 배달의 마지막 임금인 단웅(檀雄)과 웅씨왕녀(熊氏王女) 사이의 아들이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 요동(遼東) 아사달(阿斯達)에 세워진 단군조선(檀君朝鮮)으로, 그가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입니다. 이 당시 치우가 중원에서 죽고, 그의 부하들이 산동(山東)에 머물면서 회대(淮岱)를 포함하여 구려(九黎)를 세웠으며, 구려의 백성들이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양자강(揚子江) 유역의 호북(湖北)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남이족(南夷族)을 이루는데, 이들이 바로 초(楚), 오(吳), 월(越) 나라의 근간이 됩니다. (1) 그 후 산동에는 다시 낭야국(琅邪國), 번한(番韓, 番朝鮮)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옛부터 우리 선조들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초(楚)의 항우장사(項羽壯士)를 그렇게도 수없이 말했던 것이지요. 항우는 진시황(秦始皇)이 죽고 천하가 어지러운 가운데 유방(劉邦)이 나서자 스스로 자결하여 자신을 따라주었던 초의 백성들을 유방에게 맡기게 되며, 이리하여 유방은 한(漢, 孝)의 고조(高祖)가 됩니다.

고대부터 나라와 군대의 상징인 깃발에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등의 짐승을 그렸거나, 오로지 문자로 표시하였습니다. 한반도의 귀면(鬼面)과 중국의 귀면은 신석기시대 유물과 옥기(玉器)를 통하여 보면 모조리 멧돼지(豕, 亥)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조형(祖形)이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됩니다. 더구나 치우가 군주로 있었던 구려에서는 필강(疋絳)이라 하여 혜성(彗星)처럼 길게 뻗은 붉은 기운을 치우의 분신(分身)으로 여겼다고 하였는데, 그래서 치우의 깃발 모양이 굽어진 불꼬리가 달린 세모꼴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연(鳶)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는 말이지요. 깃발은 단군왕검이 승천하였을 때에도 내세웠다고 하는데, 이 때의 깃발이 아마도 장례 때에 사용하는 명정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장례시 영구(靈柩) 행렬 맨 앞에는 붉은색의 명정(銘旌)을 앞세우고, 그 뒤에는 노란색의 공포(功布)와 흰색의 만장(輓章) 깃발들을 들고 가게 됩니다. 조선시대 사용했던 군기(軍旗)에서도 세모꼴이나 네모꼴 천에 꼬리들이 달려있었으며, 그 안에 주로 신령시하는 영물이나 짐승, 또는 글자를 수놓았는데, 절대로 송곳니난 멧돼지 같은 귀면을 그리지 않았으며, 멧돼지를 그렸으니 당연히 뿔같은 것은 더구나 없었습니다. (1)

하상대(夏商代)의 도철문을 비롯한 사실적인 표현들은 대부분 무식한 인민(人民)들이 사람을 해치는 흉물을 제대로 알게끔 하여 기피하고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고 기록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상징으로 웅상(雄常)이 있는데, 이는 그저 나무로서 신목(神木)을 말한 것이며,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장승(長生)에서 마을에 들어오는 마귀(魔鬼)를 퇴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얼굴을 무섭게 표현하였습니다. 그 밖에 한반도 전통의 무늬는 거의 대부분 문자에 가까운 추상적인 무늬이거나, 고대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영물을 군왕이나 나라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현재도 쓰고 있는 봉황 무늬는 단군 때부터 영물로 알려진 봉황을 소재로 한 것으로, 닭(鷄)에서 변형하여 암수로 구분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한자의 상형문자는 치우 이후 은대(殷代)에 나오게 되니, 치우가 사용하였다는 깃발은 그저 붉은색의 세모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무늬로서 대표적인 것이 국기(國旗)에 나타나는 태극무늬(太極紋)이며, 이와 비슷하게 삼태극(三太極)이 있고, 삼원(三元, 三圓)이 있습니다. 또한 그 이전에는 환주십자문(環周十字文)의 윷무늬(柶板文)와 연꽃무늬(蓮花文)가 있었는데, 윷무늬는 동이족의 확산과 더불어 지중해 연안 지역과 독일, 아일랜드 등지의 유럽 전역에서 환주십자문(環周十字文)으로 되었고, 뒤이어 스위스, 영국 등지에서 십자문(十字文)으로 발전하여, 이 십자문이 고대부터 유럽 카톨릭 국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英國)에서도 십자(+)와 간방의 X자를 합친 미자문(米字文)을 국기로 사용하는데, 십자문은 사방을 다스린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간방의 X자문은 그 사이의 나머지 영토를 다스린다는 의미가 담겨져, 예로부터 유럽에서 간방의 무늬는 제후국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X자문을 상징으로 하는 스코트랜드는 십자문인 잉글랜드의 제후국이라고 나타낸 셈이지요. 십자문과 같은 성격이 독일 나찌의 스와스티카(Swastica) 무늬입니다. 결국 이들 모두 한반도 동이족의 십자형 윷무늬 이후에 나온 것으로, 영국에서 국기로 사용하는 푸른 바탕에 붉은 미자문은 한반도 동이족의 속국(屬國)을 상징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연꽃무늬는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한 무늬로 대체로 윷무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꽃무늬와 윷무늬가 복합되어 일본 구주(九州)로 넘어갔는데, 그래서 구주의 왜국(倭國) 가운데 일부 제후(諸侯)는 십자(十字)에 간방(間方)을 더 그은 미자문(米字文)으로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이것을 미자문(米字文) 또는 국화문(菊花文)의 일종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국화문에는 미자문 가운데에 동그란 원이 있습니다. 이것을 좀더 변형하여 빨간 색으로 햇살이 뻗는 태양처럼 만든 것이 태평양전쟁 때에 사용한 일본의 일장기(日章旗)로서, 이 일장기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한국민을 마구 죽일 때 사용한 총칼에 걸려져 있던 것입니다. 붉은 색의 일장기에 들어있는 미자문은 한국인들의 피로 물들여져 5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더구나 치우천왕과 관련된 깃발을 만들 때에 미자문을 넣는다는 것은 그렇게 피로서 나라를 지켰던 우리 조상들을 욕보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2) (2002-06-28 발표, 2004-08-06 수정)


(1) 필자는 처음 삼묘족(三苗族)을 치우 후손으로 보았으나, 여러 문헌과 정황으로 보아 강남의 섬 지역이 지금처럼 내륙이 되기 전에 기존에 거주하였던 남이(南夷)의 원주민을 일컫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래서 월의 구천이 삼묘를 교화시키고 옷을 입히는데 일조를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지금의 중국 지도부는 근간의 외교 활동으로 보아 삼묘족을 근간으로 두는 등소평을 시작으로 하여 회대, 즉 오월 지역에서 성장한 남이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 여겨진다.

(2) 이조시대까지도 군대에서 사용하였던 깃발 가운데 붉은 색의 세모꼴 천에 연(鳶)처럼 꼬리가 달린 깃발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와 똑같은 깃발들이 중국에서도 발견된다. 여러가지의 고대 기록을 참조하건데, 최초의 깃발은 분명 치우 때에 등장하였는데, 이 당시에는 화산 폭발과 용암 분출로 세상이 어지러울 때이었다. 그래서 용암이 지표면에 흘러가는 것을 용(龍)이라 말하고, 화산폭발로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주작(朱雀)이라 말했으며, 이러한 화기(火氣)로 인하여 세상의 온갖 사기(邪氣)와 악기(惡氣)를 없애주는 바람(風)과 빛(光)을 봉황(鳳凰)이라 말한 것으로 여겨진다. 봉(鳳)은 풍(風)이고, 황(凰)은 광(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783년 일본 아사마 화산이 폭발할 때 그 모습을 그린 그림이 남아있는데, 시뻘건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이 마치 물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 형상이 분명 구름과 번개에 싸여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같은 수직상승의 용암 분출은 1822년 베수비오(Vesvio) 화산에서도 관찰된 바가 있는데, 대개 화산재 구름은 3,000m 정도 솟구치고, 간혹 용암줄기가 2,000m 정도까지 솟구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888년 일본 반다이 대지진 때에는 원추화산 전체가 폭발로 무너져 내렸는데 이 때의 그림에서 용암 분출 모습이 미자문 일장기의 모습과 똑같다. 즉 미자문 일장기는 해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화산 폭발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적을 제압하는 도구로서의 최초의 깃발은 이런 불덩어리를 표현한 것으로서, 길다란 세모꼴에 불꼬리가 줄줄이 달려있는 모양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연은 불이 솟아올라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곧 용암 덩어리들이 하늘로 솟구치는 상황을 재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용에 대한 기록과 자세한 내용은 변광현의 저서, '검의 기원'에 수록되어 있다.

  1. 한글은 영어(英語)의 어원(語源) (上古時代 - 한글은 英語의 語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