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연구 요약 - clover3/Roland GitHub Wiki

역사 연구의 단위

역사를 연구할 때 이해 가능한 단위는 민족이나 시대가 아니라 '사회(societies)'다. 예컨대 영국 역사를 시대별로 아무리 자세히 조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영국사 전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전체에 포함된 부분들(예를 들어, 프랑스, 네덜란드)은 같은 자극(stimuli)이나 도전에 각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데, 이 점을 설명하고자 헬라스 사회의 역사를 그 예로 소개한다. 영국이 '전체'나 '사회'에 속한다는 것은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에 속한다는 뜻이며, 이를 통해 시기별 영토 확장과 시작 지점을 추정할 수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의 역사가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 안에 속한 국가들보다 약간 오래됐을 뿐이다. 그 기원을 탐구해보면 우리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가 기원을 둔 사회, 즉 지금은 사라진 그리스-로마 또는 헬라스 사회라는 또 다른 사회가 나타난다. 또한 그 밖에도 정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극동 사회 등 몇 개의 사회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유적으로만 남은 몇몇 사회도 보인다. 그 중에는 유대인 사회나 파시교도 사회와 같이 불분명한 사회도 있다.

문명의 비교 연구

이 장의 목적은 모든 사회, 문명, 원시사회 또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비문명 사회 등을 파악, 정의, 명명하는 것이다. 첫번째 조사 방법은 이미 확인된 기존 문명을 살펴 이 문명들의 기원을 알아내고, 정교 그리스도교 문명이 헬라스 문명에 동화된 것처럼, 이 사회들이 동화면 문명 중에 사라진 문명을 찾을수 있는 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 진행 순서는 (a) 그 잘체가 혼란한 시대의 결과물인 세계국가( 예:로마제국) , 그 뒤를 이은 (b) 정치적 공백기, 거기서 나타나는 (c) 교회와 (d) 그리스 영웅시대 이민족이던 게르만족의 대이동 순으로 나탄ㄴ다. 교회 탄생과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각각 내부 및 외부 '프롤레타리아'와 문명이 쇠퇴한 결과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 정교 그리스도교 사회는 지금의 서구 사회처럼 헬라스 사회가 그 기원이다.
  • 이슬람 사회의 기원은 본디 별개이던 두 사회, 즉 이란과 아라비아의 융합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의 기원을 찾아 또 거슬러 올라가 보면, 1,000년간의 '헬레니즘 침입'의 배경에는 멸망한 고대 시리아 사회가 있을을 알 수 있다.
  • 힌두 사회의 배경에 인도 사회가 있을을 알 수 있다.
  • 극동 사회의 배경에는 고대 중국 사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화석 사회'는 이미 알려진 하나나 그 이상의 멸명한 사회에서 나온 유물로 밝혀졌다.
  • 헬라스 사회의 배경에 미노스 사회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다른 동화된 사회와 달리, 헬라스 사회는 미노아 사회의 내부 프롤레타리아가 전파한 종교를 이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따라서 전적으로 동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고대 중국 사회의 배경에는 상나라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인도 사회의 배경에는 같은 시기 수메르 사회와 관계를 맺은 인더스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수메르 사회의 자손으로 히타이트와 바빌로니아라는 두 사회가 더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이집트 사회에는 선조나 계승자가 없었다.
  • 신대륙에는 안데스, 유카텍, 멕시코, 마야의 네 사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문명'의 수는 총 21개이며, 만약 정교 그리스도교 사회를 정교 그리스도교 사회의 본체(소아시아와 발칸 지역)와 정교 그리스도교 사회의 분파(러시아)로 나누고, 극동 사회를 중구과 일본 및 한구으로 나눈다면 총 23개가 된다.

사회의 비교 가능성

  1. 문명사회와 미개사회 문명사회들에는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을 바로 미개사회와는 별개의 부류라는 점이다. 미개사회의 수는 문명사회보다 훨씬 많지만, 각각의 크기는 훨씬 작다.

  2. '문명 단일론'의 오류 단 하나의 문명, 즉 오직 서구 문명만이 문명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다. 모든 문명이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는 '전파론' 또한 마찬가지다.

  3. 문명의 비교 가능성의 근거 인류 문명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아주 짧아서 그 기원이 가장 이른 문명일지라도 6,000여 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문명들을 '철학적 동시성'을 가진 단일한 '종'의 구성원으로 취급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이 이 점에서는 절반의 진실로 드러난다.

  4. 역사, 과학, 창작 역사, 과학, 창작은 '우리의 사고 대상 가운데에서 인류의 현상을 표현하는 각기 다른 세 도구'다. 세 기술의 차이점을 파악하고, 역사를 주제로 표현할 때 과학과 창작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본다.

문명의 발생 문제와 해답의 오류

  1. 문제점 21개의 '문명화된' 사회 가운데 15개 사회는 이전 문명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6개는 원시생활에서 바로 탄생했다. 오늘날 까지 존재하느 미개사회는 거의 변화가 없으나, 본디부터 활발하게 진보해온 것은 분명하다. 사회생활은 인류 역사보다 길어서 곤충이나 동물 사이에서도 발견되고, 지금까지 형성된 어떠한 문명보다 더 크게 진보하여 미개인이 인간수준으로 발전한 것 또한 분명 미개사회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알다시피 미개사회는 변화가 거의 없다. 문제느 이것이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원시적인 '풍습 덩어리'가 무너졌을까?

  2. 인종설 우리는 문명을 시작한 인간이 지닌, 다소 특별한 속성이나 당시의 특별한 환경적 특성, 또는 이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 이 중 첫번째 이를테면 세상에는 북유럽계인종처럼 우수한 인종이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까닭에 문명이 탄생했다고 보는 견해를 검토 후 기각하였다.

  3. 환경설 안락한 삶을 제공하는 특정 환경이 문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열쇠라고 보는 견해를 검토 후 기각하였다.

문명의 발생 도전과 응전

  1. 신화가 주는 단서 이미 검토 후 기각한 두 견해는 지극히 영적인 문제에 물체를 다루는 과학적 절차를 적용한다는 착오를 범하고 있다. 인류의 지혜를 신성화한 위대한 신화를 조사해보면, 인간이 문명을 건설한 것은 우수한 생물학적 재능이나 지리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어떤 난관에 부닥쳤을 때 놀라운 힘으로 이를 대처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2. 문명 발생 문제에 응용된 신화 문명이 시작되기 전 아프라시아 대초원(사하라 사막과 아라비아 사막)은 물이 풍부한 목초지였다. 이 초원에 긴 가뭄이 이어지자 거주민은 다양한 방법으로 어려움에 대처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땅을 지키며 생활양식을 바꾸고 유목 방식을 발전시켰다. 다른 사람들은 초원에서 열대지역으로, 이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며 원시 생활방식을 고수했으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나일 강 유역의 습지와 밀림으로 들어가 그 곳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면서 배수로를 건설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 지역이 바로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과 이유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수메르 문명이 건설되었고, 인더스 강 유역에는 인더스 문화가 꽃 피게 되었다. 상나라 문하는 황허 유역에서 발생했다. 어떤 난관이 원인이 되어 문명이 탄생했는지 그 속성은 알 수 없으나, 조건이 다소 심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마야 문명은 열대림, 안데스 문명은 차가운 고원이라는 난관에 대응하여 건설되었다. 미노스 문명은 바다에 대응하여 건설되었다. 미노스 문명의 창시자는 아프리카 연안의 가뭉을 피해 물을 찾아 크레타 섬과 에개 해 제도에 정착한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가까운 대륙인 아시아나 유럽에서 온 사람이 아니었다. 동화된 문명은 본디의 지리적 요인이 아니라 동화된 사회의 '지배적 소수자' 등과 같은 인문환경 때문에 치열한 존속 문제가 생겼다고 보아야 한다. 지배적 소수자는 지도적 역할을 멈추고 압제적으로 변한 지배계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실패한 문명사회 내부 및 외부 프롤레타리아는 그곳을 떠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게 된다.

문명의 발생 역경의 효능

문명 발생에 관한 앞장의 설명은 이 문명들이 비교적 어려운 조건에서 생겨난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현재 이 가설은 한때 문명을 꽃피웠지만 결국 실패한 지역들, 그리고 본디 조건으로 되돌아간 지역들의 실례를 통해 사실에 더 가까워졌다.

  • 한떄 마야 문명이 있던 곳은 현재 다시 열대림이 되었다.
  • 인도 문명은 비가 내리지 않는 따이 절반인 실론 섬에서 꽃피웠다. 지금은 완전히 황무지가 되었지만, 인도식 관개시설의 잔해가 남아 있어 한때 이곳에서 문명을 꽃피웠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 페트라와 팔미라의 잔해는 아라비아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들에 남아 있다.
  • 태평양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이스터 섬은 그곳의 석상들을 통해 한때 폴리네시아 문명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 뉴잉글랜드의 유럽 이주민들은 북아메리카 역사에서 지배층을 이루었는데, 뉴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가장 척박한 황야다.
  • 로마의 캄파니아에서 최근까지 말라리아가 창궐한 원시림으로 남아 있는 라틴 지역은 로마 권력의 출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좋은 조건에서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카푸아와는 대조적이다. 헤로도토스의 저서와 '오디세이아' '출애굽기' 에도 이러한 묘사가 등장한다.
  • 살지 좋은 니아살랜드 원주민은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던 먼 유럽 침입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원시적이 야만성을 유지하였다.

환경의 도전

  1. 환경의 혹독함이 주는 자극 인접한 환경에 있는 곳들을 짝지어 보자. 각각의 짝 중에서 전자는 '더 척박한' 지역임과 동시에 한 종류 이상의 문명을 건설한 곳으로써, 더욱 눈부신 기록을 보유한 땅이다. 이런 짝들에는 황허 유역과 양쯔 강 유역, 아티카와 보이오티아, 비잔티움과 칼케돈, 이스라엘과 페니키아와 팔레스틴, 브란덴부르크와 라인란트,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북아메리카와 여러 유럽 개척지가 있다.